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선천적으로 아름답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수술을 해서라도 미를 얻고자 했다. 빼어난 외모,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금 우리나라엔 천박한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외모가 출중한 사람은 그것만으로 각종 사회적 보상과 우대를 받고 있죠. 이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큰 차별인 바, 미남 미녀에게 부과하는 세금, 외모세 도입을 건의합니다.”
한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이는 외모 때문에 고통 받던 모든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역차별이 되었다. 국세청은 연말마다 외모정산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복지 재정 확충이라는 명목 하에 외모 등급이 높을수록 많이 과세했고, 반대로 추남 추녀에게는 환급도 해주었다. 못생겨지기 위해 노력하는 ‘어글리 신드롬’이 생겨났다. 미모 = 가난이라는 공식이 굳어지면서, 사람들은 앞다퉈 못생긴 이들과 선을 보려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추세에 아랑곳없이 예쁜 여자와 결혼했다. 주변에선 내가 어디가 모자라 그러냐며 펄쩍 뛰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어떤 남자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조건이 아닌 내면을 사랑한다. 그녀 역시 그럴 것이다. 행복하게 날 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면, 단지 내 못생긴 외모뿐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동안 우리는 행복했다. 가장 기뻤던 것은 아이가 생겼을 때였다.
– 여보, 당신 아빠 된대.
문자를 보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아내를 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하지만 순수한 기쁨에 찬 나와 달리 아내는 걱정이 많았다.
“나 말고 당신을 닮아야 할 텐데…”
“그런 소리 마! 애가 못생기지 않아도 우리 자식인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마침내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귀여운 남자애였다. 벌써부터 쌍커풀이 또렷한 동그란 눈이 아내를 똑 빼다 박았다.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나와는 달리 아내의 표정은 어두웠다.
“여보, 미안해…”
이런 예쁜 애를 낳아서, 하는 듯 힘없는 목소리였다. 아내는 자신의 ‘잘못’을 만회라도 하겠다는 듯 둘째 만들기에 착수했다. 곧 다시 임신을 했다. 의사가 핑크색 옷을 준비하라는 걸 보니 딸인듯 싶었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니까, 이번엔 제발…!”
아내의 바람과 달리, 또다시 첫째를 닮은 귀여운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겉모습은 중요치 않다고 누차 말했지만 아내는 세상이 끝난 듯 울어댔다.
“예쁘면 어때? 충분히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구!”
“이 애도 나처럼 괄시받는 삶을 살 거라 생각하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
아내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미칠 듯 죄책감만 들었다.
말수가 줄어든 아내의 기분 전환을 위해, 내 고향에서 며칠 지내고 오자고 제안했다.
“맑은 공기도 좀 쐬고, 애들 오랜만에 할머니도 만나게 해 주자고.”
어머니는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간만에 찾은 행복한 일상이었다. 아내도 잠시나마 강박을 잊은 듯 했다. 나는 주로 걸음마를 시작한 큰아이와 밖에서 놀며 시간을 보냈다. 그 저녁도 그런 평범한 날 중 하루였다.
혼자 내 방을 구경하고 있는 듯한 아내, 내가 들어서자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돌아본다. 그런데 표정이 전에 없이 싸늘했다. …아뿔싸! 그녀의 손에는 내 어릴적 사진이 들려있었다. 다 치워 버리라고 어머니께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그녀가 묻는다.
“이거 누구야? 당신이야?”
“어… 그거! 그거 나 아니야. 사촌, 그래 사촌 동생이야!”
“그래? 그럼 졸업앨범에 이건 누구라고 설명할 건데. 장동건, 당신 이름 맞잖아!”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집어던진 고등학교 앨범에는 내 성형 전 모습이 담겨있다. 떠올리기조차 싫은,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끔찍한 시절의 모습. 쌍커풀 풀고 코 낮추고, 지방 주입 하기 전 내 원래 모습이.
아내가 증오에 차서 날 바라본다.
“거짓말쟁이. 난 자연추남이란 거 믿었는데, 성형한 줄도 모르고 우리 예쁜 애들 보면서 나 자신만 죽어라 원망했는데! 당신. 원래 되게… 잘 생겼었구나?”
*
이제 잘생긴 사람은 찾기가 어렵다. 선천적으로 아름답게 태어난 사람들은 수술로라도 외모를 바꾸려 한다. 추함. 그것은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새로운 권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