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문이 열렸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그녀는 익숙하게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이 아니시죠?”
내 물음에 고개를 한 번. 까닥인다.
“어떤 걸 원하시나요?”
“미련을 버리려고요.”
그러고는 가방 안에 들어있던 미련을 조심히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 크기를 보니 꽤나 오랜 시간 끌어안았던 것 같았다. 나는 단번에 그것이 이별 후 느꼈던 감정임을 알 수 있었다.
“많이 힘드셨겠네요.”
“이젠 아니에요.”
가늘어진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그녀가 답했다. 나는 미련의 무게를 재며 그만큼 비어버린 그녀의 마음속을 상상했다.
“그럼 무엇을 드릴까요?”
“나도 잘 모르겠네요.” 여전히 이쪽을 보고 있지 않지만 슬픈 눈이었다.
나는 서랍들을 열어 그녀에게 줄만한 무언가를 찾았다. 혼자만의 시간, 새로운 취미, 주변의 위로, 그것들 모두 어딘가 딱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저거 한 번 보여주세요.”
등뒤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옅은 빛이 새어 나오는 작은 서랍이 있었다. 금방 사라질 것만 같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는 작은 꿈이었다.
“어릴 적 꿈인가 봐요.”
양손으로 꿈을 조심히 들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 들더니 종이로 한 번 싼 뒤 가방에 담았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한번 까닥,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갔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소리를 내고는 이내 조용해졌다.
이별의 회복과 꿈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아마 나는 모르는 그녀만의 맥락이 있겠지. 이 가게에 오는 모든 손님들이 본인의 삶을 드러내진 않는다. 나는 그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건네줄 뿐. 이제는 주인 없는 미련을 상자에 담은 뒤 뚜껑을 닫고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